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드라마를 제 의지로 틀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개그물이야, 그냥 가볍게 봐"라고 해서 반신반의로 켰는데, 어느새 가족 모두가 밥 먹으면서 보고 있더라고요. 다 보고 나서 느낀 건 "재밌긴 했는데, 이게 과연 잘 만든 드라마인가?"라는 애매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물음을 좀 더 파고들어 봤습니다.
초능력을 결핍의 은유로 설계한 방식
원더풀스가 기존 초능력물과 달라지는 지점은 능력 자체의 스펙터클보다 능력의 발현 조건에 있습니다. 드라마 용어로 말하면 일종의 심리적 메타포로서의 초능력 설계, 즉 캐릭터의 내면 상처를 능력의 트리거로 삼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트리거란 특정 감정이나 상황이 능력 발동의 조건이 된다는 뜻입니다.
은채니의 순간이동은 심장이 빨리 뛸 때 발동됩니다. 평생 심장 때문에 해성시를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이 가장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강해질 때 어딘가로 튀어나가는 것이죠. 강로빈의 괴력은 모욕을 당할 때 나옵니다. 평생 착하다는 이유로 눌려 살아온 사람의 억압된 분노가 방아쇠가 됩니다. 손경훈의 접착 능력은 거짓말을 할 때 발동됩니다. 허세와 변명으로 버텨온 사람이 자꾸 어딘가에 달라붙는 거예요.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능력이 캐릭터의 장점이 아니라 상처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마블식 히어로물에서 초능력은 대개 선물처럼 등장합니다. 반면 원더풀스는 그 능력이 얼마나 아픈 사람에게 왔는가를 먼저 보여줍니다. 이 설계는 꽤 정교했고,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캐릭터 앙상블과 배우 연기력
캐릭터만 놓고 보면 원더풀스는 확실히 강점이 있는 드라마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도 연기력 걱정 없이 볼 수 있었던 게, 이미 검증된 배우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특히 손현주 배우가 연기한 하원도 박사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서늘한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하원도는 전형적인 악당의 언어를 쓰지 않습니다. 차분하고 확신에 차 있으며, 자신이 인류를 위한 연구를 한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드라마 비평 용어로는 나르시시즘적 악의(narcissistic malevolence)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적 악의란 자신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확신 아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심리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인물이 소름 돋는 이유는 초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임에도 작품 전체에서 가장 파괴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차은우 배우의 이운정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초반의 절제된 분위기는 캐릭터와 잘 맞았지만, 서사의 무게를 끌어안아야 하는 중후반부에서 감정의 밀도가 다소 얕게 느껴졌습니다. 주변 캐릭터들이 강한 앙상블을 이루는 만큼, 중심축인 이운정의 공백이 더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여기에 배우 개인을 둘러싼 세금 추징 논란이 캐릭터 몰입에 영향을 줬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작품은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 맞지만, 도덕적 무게를 담아야 하는 캐릭터를 볼 때 현실 이슈가 떠오르면 집중이 흐트러지는 건 사실이니까요.
원더풀스 주요 캐릭터별 능력과 발동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은채니: 순간이동 / 심장이 빨리 뛸 때 발동, 목적지 조절 불가
- 강로빈: 괴력 / 모욕·비난을 들을 때 발동
- 손경훈: 접착 / 거짓말·자기기만 시 발동
- 이운정: 염력 / 20년 전 실험 생존자, 통제력 있으나 과거 죄책감에 억눌림
1999년 세계관과 시대적 배경의 활용
다른 리뷰에서 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의견을 봤는데, 사실 저도 보면서 그 부분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다 보고 나서 "배경이 언제였더라?" 하고 잠깐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1999년이라는 설정이 드라마 전체에서 얼마나 체감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소품 수준에 머물렀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1999년은 Y2K 버그와 노스트라다무스 종말 예언이 겹쳤던 해입니다. Y2K란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해 전 세계 시스템이 오작동할 것이라는 공포로, 당시 전 세계적으로 극도의 불안감이 퍼져 있었습니다. 여기에 IMF 외환위기 직후 실업과 가족 해체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의 맥락까지 겹쳐 있었습니다. 구원영생교가 종말과 영생을 팔고, 하원도가 영생 연구를 강행하는 설정은 이 맥락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설정 자체는 탄탄합니다.
문제는 그 배경이 세계관의 토양으로 쓰이지 못하고 무대 장식에 그쳤다는 점입니다. IMF 이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세기말 불안이 사이비 종교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구조가 어떤 것인지, 이런 부분이 드라마 안에서 더 깊이 체감됐다면 원더풀스는 훨씬 입체적인 작품이 됐을 겁니다. 실제로 1990년대 말 한국의 사이비 종교 피해 사례는 사회적으로 상당했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그 현실과 드라마의 구원영생교가 겹쳐졌다면 공포감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텐데, 아쉬운 지점입니다.
쿠키 영상과 시즌2 가능성
드라마 본편이 끝나고 하원도 박사가 눈을 뜨는 쿠키 영상이 나옵니다. 저는 처음에 "아, 전형적인 OTT 식 시즌2 떡밥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장면이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쿠키 영상에서 경찰이 구원영생교 지하실을 수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간상으로 49재가 지날 만큼 이미 한참 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시점에 경찰이 움직이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드라마 안에서 공권력은 이미 구원영생교의 영향을 받은 조직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수색은 외부 개입이 있었다는 뜻이고,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주란이 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뇌 능력으로 경찰을 움직여 하원도를 찾으려 한다는 해석입니다. 이 구도가 맞다면 시즌2의 핵심은 단순한 악당 복귀가 아닙니다.
하원도는 분더킨더(Wunderkinder) 아이들의 능력 부작용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분더킨더란 독일어로 '경이로운 아이들'을 뜻하며, 드라마에서는 불법 생체 실험으로 초능력을 얻게 된 아이들을 가리키는 프로젝트명입니다. 이 아이들이 능력을 쓸수록 몸이 망가져 가고, 그 해법이 가해자에게 있다는 아이러니가 시즌2의 윤리적 딜레마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하원도를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이용해야 하는가. 이 구도라면 원더풀스는 단순한 초능력 코미디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해석의 여지를 만들어 냈음에도, 넷플릭스가 OTT 시리즈에서 자주 쓰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 방식으로 마무리한 건 분명 감점 요소입니다. 클리프행어란 결말을 닫지 않고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열린 결말을 뜻하며, 현재 글로벌 OTT 시리즈에서 시즌 연장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출처: 넷플릭스 공식 인터뷰 아카이브). 채니와 친구들이 겨우 해성시를 구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따뜻한 마무리를, 굳이 다시 열어젖힌 셈이니까요. 저도 언니에게 "결말이 좀 아쉽다"라고 투덜댔는데, 바로 그다음 장면에서 시즌2를 암시하는 결말이 나오길래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원더풀스는 완벽한 드라마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내러티브 밀도(narrative density), 즉 각 장면이 다음 장면을 밀어내는 서사의 추진력이 특히 초반부에 약했고, 분더킨더 캐릭터들은 설정만 매력적이고 실제 장면에서는 기능적인 빌런으로 소비됐습니다. 시대적 배경도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고요.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든 건 인물들의 온기였습니다.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어설프게나마 누군가를 구하려고 애쓰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이미 넷플릭스를 구독 중이라면 킬링타임용으로 충분히 볼 만합니다. 가족과 같이 밥 먹으면서 가볍게 틀어놓기에 나쁘지 않아요. 다만 개연성이나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고 보신다면 조금 답답할 수 있습니다. 시즌2가 나온다면 그때 한꺼번에 몰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