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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이루워지는 앱, 기리고 후기 (몰입감, 무속신앙, 캐스팅)

by 지썬 2026. 4. 30.

밤 8시에 1화를 틀었다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화를 닫은 경험, 공포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언니, 형부와 셋이서 그렇게 기리고를 달렸습니다. 8부작을 단 하루 만에 다 봤으니까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꽤 잘 만든 시리즈입니다.

기리고 어플의 세계관과 몰입감

기리고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복선입니다. '기리다'와 '빌다'에서 온 이름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극 중 이 어플은 소원을 들어 주는 대신 24시간 타이머가 시작되고, 타이머가 0이 되면 소원을 빈 사람이 죽는 구조로 작동합니다.

공포물에서 세계관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고, 그냥 분위기와 장면만으로 승부해도 충분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점프 스케어(jump scare) 위주의 연출로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들이 있으니까요. 여기서 점프 스케어란 조용한 상황에서 갑자기 큰 소리나 이미지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을 말합니다. 저는 그 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기리고는 그쪽보다 서사에 더 집중했습니다.

솔직히 1화를 켜자마자는 '또 고등학생들 스마트폰 어플 공포물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상이 꽤 빨리 깨졌습니다. 어플의 법칙, 저주의 탄생 배경, 인물들이 저주를 헤쳐 나가는 과정이 하나씩 연결되면서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초반에 던진 떡밥들이 중후반부에 제대로 회수되는 구조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무속신앙과 오컬트의 조합이 신선했던 이유

기리고를 보면서 제일 의외였던 부분은 샤머니즘(Shamanism) 요소가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샤머니즘이란 무당이나 주술사가 신령과 교류하며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우리나라 전통 무속 신앙 체계를 말합니다. 스마트폰 어플이라는 현대적 소재와 이 전통 무속이 나란히 앉아 있는 구성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어플이 만들어진 이유와 저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무속적 세계관이 이야기의 뼈대를 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그냥 디지털 도구가 악한 것이 아니라, 오래된 원한과 의식(儀式)이 현대의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느낌이 납니다. 저는 보는 내내 어릴 때 봤던 학교괴담의 어둠의 눈 편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세대가 다르고 소재가 다른데 그 근저에 있는 정서가 비슷했달까요.

오컬트(Occult) 장르는 초자연적 현상이나 신비주의를 중심에 두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이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감이 아니라 이야기 안에서의 내부 논리, 즉 세계관 자체의 설득력입니다. 기리고는 그 설득력을 꽤 잘 확보했다고 봅니다. 어플이 왜 만들어졌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그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야기 안에서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 따르면 국내 OTT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편수는 2023년 기준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으며, 장르물과 오컬트 계열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기리고는 그 흐름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면서도, 단순히 트렌드에 올라타는 것 이상을 보여준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캐스팅과 연기, 기대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캐스팅을 두고 의견이 나뉠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주연 다섯 명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들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고, 오히려 그래서 선입견 없이 캐릭터 자체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니 후자가 맞았습니다. 얼굴을 딱 봤을 때 이 배우가 어떤 이미지다, 하는 생각이 끼어들지 않으니 캐릭터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주연 다섯 명의 캐릭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세아(전소영): 국가대표 상비군 수준의 육상 선수. 강하고 당찬 성격
  • 임나리(강민아): 부유하고 아이돌 외모에 인기 많은 캐릭터. 질투심과 자존심이 강함
  • 김건우(백선호): 훈남 스타일, 유세아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육상부 동료
  • 강화준(현우석): 코딩에 능한 컴퓨터 천재. 조용하고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음
  • 최용욱(이호제): 장난기 많은 덕후 기질의 캐릭터. 기리고 어플을 처음 사용한 인물

여기에 방울(노재원)이라는 캐릭터가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저도 보면서 이 캐릭터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가는 분위기에서 방울이가 나오면 잠깐 숨이 트이는 느낌이 납니다. 진지할 때는 제대로 진지하고, 순한 면모와 가벼운 유머가 공존하는 캐릭터라 이름처럼 존재 자체가 귀엽습니다. 햇살(전소희)과 방울, 이름 조합도 참 귀엽더라고요.

기리고 어플의 탄생 배경을 담당하는 도혜령(김시아)과 권시원(최주은)의 연기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이 둘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어야 시리즈 전체의 전제가 흔들리지 않는데, 실제로 충분히 설득됐습니다. 특히 이상의 씨가 연기하는 무당 역할은 등장 횟수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나올 때마다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무게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아쉬운 점과 시즌 2에 대한 기대

공정하게 보자면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일부 장면에서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고, 방울 캐릭터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몇몇 장면에서는 무거운 흐름을 너무 급격하게 끊어 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환기의 강도를 조금 낮추고 더 자주 배치했다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얼굴을 잘 못 외우는 편인데 햇살(전소희)과 주인공 유세아(전소영)가 같은 단발 스타일이라 초반에 한참 헷갈렸습니다. 이름도 유사하고 외모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누가 누군지 순간 혼란스러웠던 장면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셨다면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CGI(Computer-Generated Imagery), 즉 컴퓨터로 생성한 시각 효과 측면에서도 일부 장면에서 어색함이 보였습니다. 인물이 날아가거나 초자연적 현상이 표현되는 장면에서 완성도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서도 제작비 수준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는 부분인데, 전체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시즌 2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대가 됩니다. 결말이 이야기가 완전히 닫히지 않은 느낌으로 마무리되고, 실제로 시즌 1이라는 표기도 확인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햇살과 방울의 프리퀄(Prequel), 즉 본 이야기보다 앞선 시간대를 다루는 이전 이야기가 따로 나왔으면 합니다. 햇살이 어떻게 무당이 됐는지, 방울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그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이 궁금해집니다.

넷플릭스 공식 발표에 따르면 기리고는 공개 직후 한국 콘텐츠 순위 상위권에 진입하며 시청자 반응을 얻었습니다(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수치로도 증명된 반응이니 시즌 2나 스핀오프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봅니다.

가볍게 무섭고 싶은 밤이 있으시다면, 기리고는 꽤 좋은 선택입니다. 점프 스케어 원툴을 기대하고 들어가면 약간 다를 수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서사가 있는 공포물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분명히 새벽까지 보고 계실 겁니다. 저처럼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pOs6G_gf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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