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만 보고 그냥 넘겼던 드라마를 소개팅남 덕분에 보게 됐습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실화 기반 스릴러라는 말 한마디에 바로 찾아봤는데, 언니·형부와 밥 먹으며 시작한 1화가 결국 8화 정주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내용을 몰랐다면 안봤을 드라마, 처음엔 정말 안 볼 뻔했습니다
드라마 제목이 〈허수아비〉라고 들었을 때 솔직히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농촌 배경 가족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 "1988년 강성을 배경으로 한 연쇄 살인 사건 수사물"이라는 말을 듣고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드라마는 형사 출신 프로파일러 강태주가 30년 전 미결 사건의 진범을 찾아가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여기서 프로파일러(Profiler)란 범죄자의 행동 패턴과 심리를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전문 수사관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거가 아닌 행동의 흔적으로 역추적하는 사람입니다. 강태주가 이성진을 처음 마주했을 때 직감으로 "이 사람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장면이 바로 그 프로파일링 능력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답답함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쟤 왜 저래!", "왜 서로 소통을 안 하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답답함이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게 이 드라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8년 강성의 수사 방식, 지금 기준으론 범죄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계속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용의자를 구타하고 감금해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입니다. 시대적 배경이 1988년이라는 걸 알고 봤는데도 화가 났습니다. 알고 봐도 화가 나는 게 이 드라마의 솔직한 감상입니다.
당시 수사 관행에서 자주 등장하는 방식이 바로 강압적 자백 수사, 즉 고문 수사입니다. 고문 수사란 물리적·심리적 압박을 통해 용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위법 수사 방식으로, 현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모두에서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1988년은 이것이 사실상 표준 수사 절차처럼 묘사됩니다.
이성진, 이기범이 차례로 범인으로 몰리는 과정을 보면 패턴이 보입니다.
- 현장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유사한 전과 또는 주변 정황만으로 용의자를 특정
- 장기간 불법 감금 상태에서 수면 박탈, 폭행 등 가혹 행위로 자백 강요
- 자백 진술서를 담당 검사가 직접 작성, 용의자 서명 유도
- 공소시효(公訴時效) 만료 이전에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외부 압력
여기서 공소시효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사가 더 이상 기소를 할 수 없게 되는 제도를 말합니다. 범죄 발생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실제 화성 연쇄 살인 사건도 오랫동안 공소시효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2015년에야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드라마 속 결말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집니다(출처: 법제처).
진짜 허수아비는 범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허수아비〉인 이유를 저는 강태주의 대사에서 찾았습니다. 범인에게 하는 말 중 "너를 쫓고 있으면서 이제 누가 허수아비인지 모르겠더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허수아비 범인은 실제로 허수아비를 위장 도구로 사용합니다. 논두렁이나 밭 사이에 허수아비처럼 숨어 있다가 피해자를 낚아채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범인이 만들어낸 판 위에서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잡아 고문하고, 검사는 그 자백을 유죄 증거로 활용하고, 기자들은 그 발표를 받아 기사를 씁니다. 결국 모두가 범인이 설계한 허수아비 위에 서있던 셈입니다.
범죄 수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터널 비전(Tunnel Vis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터널 비전이란 수사관이 특정 용의자에게 확신을 가진 후 반대 증거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심리적 편향 현상을 말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이성진, 이기범이 차례로 누명을 쓰는 과정이 정확히 이 터널 비전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입니다. 실제 수사 연구에서도 이 편향이 오판 사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강태주 혼자 "이 사람이 아니다"라고 외쳐도 조직 논리와 정치적 압력이 진실을 덮어버리는 장면들이요. 그 답답함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화가 났습니다.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더 오래 남는 결말
보통 드라마를 보고 나면 "사이다 결말"이냐 "아쉬운 결말"이냐로 나뉘는데, 〈허수아비〉는 저에게 그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둘 다였다고 해야 할까요.
진범은 밝혀집니다. 임성만은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기범이 누명을 썼다는 사실도 세상에 알려집니다. 그런데 정작 이기범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자백을 받아낸 경찰들, 그 자백으로 기소를 밀어붙인 검사 차시형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이 결말이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드라마라고 해서 현실을 왜곡해 모든 나쁜 놈이 처벌받는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도 있었는데, 제작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차시형은 지위와 명예를 유지한 채 인생을 마무리하고, 강태주는 지위와 명예 없이 진실만 되찾습니다. 그 대비가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서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드라마 속 기범의 죽음이 특히 그랬습니다. 구치소에서 고문으로 입은 장기 손상이 결국 그를 죽게 만들었고,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는 이미 없었습니다. 국가폭력(State Violence)이란 공권력이 개인에게 가하는 물리적·제도적 폭력을 의미하는데, 기범의 이야기는 그 국가폭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지워버리는지를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줬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인 것 같습니다. 진실이 늦게 밝혀지면, 그 사이에 사라진 사람들의 시간은 누가 책임지는가.
아직 이 드라마를 안 보셨다면, 8화 분량이니 주말 하루면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단, 보는 내내 답답함을 견딜 준비는 하고 시작하시기를 권합니다. 그 답답함이 이 드라마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